조용하고 따뜻한 연꽃이 나를 반겨주었다
전북 김제의 작은 청운사로 떠난 연꽃 여행.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나는 꽃을 찾아 떠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꽃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큰 사찰도 아닌, 이름도 소박한 작은 절이지만 그곳에는 세상 그 어떤 화려함보다 아름다운 연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만남 - 고요한 정적 속의 연꽃
절 앞 연못에 다다르자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바람도 잠시 멈춘 듯, 물결도 잠깐 숨을 죽인 듯한 고요한 정적 속에서 연꽃 한 송이가 큰 연잎들 사이로 우아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이 멈춘 흑백 필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색깔이 사라진 자리에 오로지 순수함만이 남아있었다. 커다란 연잎들이 만들어낸 자연의 캔버스 위에 홀로 피어난 하얀 연꽃은 마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평온을 끌어올리는 듯했다.
그 옆에는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조용히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급해하지 않는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나도 그렇게 천천히, 내 속도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두 번째 만남 - 하늘을 향한 희망
시선을 위로 돌리는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떠올랐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분홍빛 연꽃이 당당하게 솟아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연꽃은 마치 하늘로 향하는 간절한 기도 같았다.
여름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녹색 잎들 사이로 연꽃은 자신만의 목소리로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같은 연못, 같은 연꽃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이렇게 다른 감동을 주는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높이 뻗은 연꽃 줄기를 따라 시선을 올리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진흙 속에서 시작된 작은 씨앗이 이렇게 하늘을 향해 당당히 피어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나도 언젠가는 이 연꽃처럼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에 남은 것들
번잡한 일상에 지친 마음으로 찾아온 이곳에서, 연꽃들은 말없이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때로는 고요한 침묵으로, 때로는 하늘을 향한 당당함으로.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함처럼, 어려운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삶의 지혜를 배웠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도,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처럼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작은 여행이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연꽃이 주는 평온함과 청운사의 고요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연꽃들이 조용히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으니까.
내년에도 다시 이곳을 찾아 연꽃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