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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은 이미 추수를 끝내고 비워졌지만,
이곳만은 아직 붉은 시간이 머물고 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메타세쿼이아들이
거대한 성벽처럼 둘러서서
떠나려는 계절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듯합니다.
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만든 저 붉은 울타리
안에는
우리가 사랑했던 가을의 온기가
아직 식지 않고 고여 있겠지요.
저 안개 너머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타오른 이 붉은 기억 하나면,
다가올 긴 겨울도 춥지 않을 테니까요.
두 번째 단상: 안녕, 나의 계절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유난히 더 붉고, 처연하게 아름답습니다.
차가운 아침 안개가 대지를 감싸 안을 때
나무들은 가장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고
묵묵히 작별을 준비합니다.
한 해 동안 쏟아졌던 볕과 바람을
오롯이 제 몸에 새겨 넣은 저 붉은 띠는
대지에게 바치는 가을의 마지막 헌사 같습니다.
이제 저 잎들이 다 지고 나면
그 자리에 하얀 눈이 내려앉겠지요.
그때까지 부디 안녕하기를.
가장 찬란했던 나의 가을이여.